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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크라쿠프. 2011. 01.

아퀴 2011. 1. 31. 01:03
아우슈비츠 수용소 1일 체험의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이번엔 소금광산에 도전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크라쿠프로 향했다.
벌써 폴란드 철길에만 깔아준 돈이 족히 10만원은 되는 기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유명한 관광지가 그 곳이니 또 안가기는 뭣한 그런 상황이다.

이번에는 그냥 일전에도 하고 싶었던 폴란드 역사 등을 곁들여 조금 이야기를 하듯이 쓰려고 한다.
무려 이제 5년전이 돼 버린 유럽여행기도 이렇게 쓰려다가 귀찮아서 못하고 있는데...
폴란드는 바로바로 라이브로 중계하니 가능할 듯.

흔히들 바르샤바(Warszawa)는 폴란드 아픔의 상징이고, 크라쿠프(Krakow)는 폴란드 영광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폴란드는 10세기경부터 나라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는데, 
가톨릭을 국교로 삼으면서 등장한 피아스트 왕조가 크라쿠프를 수도삼아 나라를 발전시키기 시작한다.
즉, 크라쿠프는 우리로 치면 경주 쯤 되려나...
일본으로 치면 교토... 중국으로 치면 시안...

9세기 쯤부터 도시의 중심에 바벨 성(바벨 탑 아님. Zamek Krolewski na Wawelu)을 짓기 시작해서 수 세기에 걸쳐 성을 짓는다.

▲ 대성당 종탑이다



바벨성에서는 비스와 강이 흐르는 걸 유유자적 지켜볼 수 있다.
내가 봤던 폴란드 날씨 중 가장 화창한 때다.

▲ 바벨성은 건축시기가 길어서 여러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 박물관으로 쓰이는 알현실 인근. 뭔가 좀 이슬람틱하기도 하다.


16세기 후반에 폴란드는 크라쿠프에서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긴다.
이 때는 지그문트 3세가 모스크바까지 점령하면서 힘이 빠방하던 때라던데,
그런데 18세기 중후반에 걸쳐서 폴란드가 힘이 점점 없어지자 주위에 있던 프로이센(프러시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세 나라가 찝적대기 시작하면서 폴란드를 갈라먹기 시작한다.

당연히 독립운동이 펼쳐지는데, 이 때 등장한 사람이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Andrzej Tadeusz Bonawentura Kościuszko) 다.
바벨성에 코시치우슈코의 동상이 있다.

▲ 코시치우슈코


코시치우슈코는 미국 독립전쟁에도 참여해 준장의 계급장을 얻었는데,
폴란드의 독립을 바라고 러시아에 대항해서 독립전쟁을 일으킨다.

▲ "나는 전민족의 자유를 원한다. 우리는 죽는다. 그러나 폴란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패하고 마는데,
(이 때가 이미 2차 폴란드 분할) 결과적으로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다시 폴란드를 더 갈라먹는 3차 폴란드 분할이 되면서 지도상으로 완전히 폴란드-리트라비아 국가가 사라져버리게 됐다.

그때부터 폴란드 인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온갖 전쟁에 참여하는 등,
유럽 여기저기에서 아픔의 역사를 당했다고...

폴란드의 독립은 민족자결주의가 등장하는 1918년에야 3국으로부터 이루어진다.
다시 나치독일과 소련의 지배를 받다가(이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이 설치) 1945년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완전히 독립을 이룬다.
물론 냉전시대라 소련의 지배를 받긴 했지만...



크라쿠프는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은 도시인데,
폴란드 분할의 시대에는 3국의 감시아래에서 자체적으로 헌법을 갖는 자유시가 되고,
바르샤바가 박살나던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독일군 사령부가 위치한 덕분으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화를 입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예전 모습도 많이 남아있고, 현존하는 중세유럽 광장 중에는 꽤 넓은 편이라고 하는 중앙시장 광장도 있다.


▲ 성 마리아 성당


광장 중앙에는 직물회관이라 불리는 옆으로 긴 건물이 자리잡고 있고,
지금은 부셔지고 없는 구 시청사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시계탑도 볼 수 있다.

▲ 지금은 기념품 판매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소금광산은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