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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에피소드

아퀴 2009. 12. 4. 02:53
얼마 안 있으면 중국으로 출장을 갈 위기에 처해 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송년회를 잡는 대학교 동기들을 보며,
이브는 연인과 함께, 당일은 솔로끼리...라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볍게 웃으며 중국에서 성탄절을 보낼 거라고 응수해줬는데... 눈에서 뭔가 흐른다.

나이뻐 지식인에 중국식 성탄 인사를 물어보고,
과연 교회도 없는 그 나라에 성탄절이란게 있긴 있는 건지,
있다면 왜 있는 건지,
빨간날이기는 한 건지,
솔로인 것도 서러운데 거기서 마무리를 해야하는 건지...

이런 여러 의문들을 뒤로하고 올해 초에 있었던 중국 출장 중에 에피소드를 몇 개 올리기로 방금 죠니형과의 대화 끝에 결정했다.


- 컨더지에서의 추억 -

역시 제일 큰 건 컨더지에서의 추억이 아닐까 싶다.
컨더지는 KFC 다.

2월 쯤에 급출장이 결정된 나는 뭔가 묘한 상황에 처했는데,
분명 예상으로는 북경으로 날아가야 하는데, 천진으로 가야했다.

문제는 천진에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있어야 된다는 거였는데, 
중국이라는 나라는 영어가 통하지 않고(one two three 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
무조건 지네나라 말로 말을 해야 알아듣기 때문에 중국을 처음 방문하고 중국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아주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게다가 중국어에는 성조가 있어서 발음만 안다고 말이 통하질 않는다.
성조도 바로 익히지 않으면 말을 할 때마다 달라져서, 도저히 사람들이 알아듣지를 못한다.

천진에 혼자 있게된지도 이틀 째였나(나랑 교체할 동기가 천진에 한 3일 같이 있어주다 한국으로 날아가고)...
도저히 회사의 중국식 풍의 한식 공장밥은 점심 한 끼 먹는 것으로도 내 수명을 하루는 갉아 먹는 것 같아 저녁까지 먹지는 못하겠고,
여차저차 시내 번화가에 위치한 호텔 근처에 있는 곳에서 먹을 거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후보는 마이땅라오(맥도날드), 컨더지(KFC), 그리고 다른 무엇인가들... 이 었는데...
빅맥은 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은 맛을 자랑하기도 하고, 이미 그 전날 먹었었기 때문에 컨더지에서 징거버거 세트를 하나 사다가 호텔에서 먹어보기로 했다.


당당히 문을 열고 천진에서 가장 번화가에 있을 것 같은 컨더지로 들어갔다.
역시, 주문 받는 곳 위에 붙은 메뉴판 등은 세계 어딜가나 유사한 것 같다.
천천히 살펴보고 징거버거로 추정되는 메뉴를 발견했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1번 자리를 꿰차고 있을텐데, 특이하게 2번 자리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좋아. 저 징거버거 같이 생긴 메뉴로 결정.

줄이 어지러워 어디가 줄인지 확실하게 모르겠는데, 일단 주문하는 줄이라고 예상되는 곳에 섰다. 외국인인 나에게 뭐든지 확실한 것은 없다.
줄을 서자마자 내 앞으로 커플이 당당히 끼어든다.
아... 여긴 한국 상식의 줄이란게 없는 나라지...
나도 바로바로 따라 붙으며 사람들을 견제하기 시작한다.
내가 왜 운전할 때도 안하는 꼬리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중국이니까... 그냥 한다.
중학교 때 집에 가기 위해 전교생을 상대로 버스를 타기 위해 몸싸움을 할 때와 같은 신경전을 5분여간 펼친 이후에 겨우 내가 주문할 차례가 되었다.

나는 2번 메뉴 세트를 달라고 말을 열심히 했다.
아뿔사... 역시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흑흑.

당황하는 알바가 다른 알바를 불러온다.
또 주문을 했다. 몇 번씩 말을 바꿔가면서 말했다.
역시 못 알아듣는다. 흑흑.

알바가 한마디 한다.

"Can you speak English?"
"!!!"

그랬다. 난 계속 영어로 주문하고 있었다.
도착한지 나흘 밖에 안되는 내가 무슨 중국어로 주문을 했겠는가...
영어로 주문 중인데, 영어 할 줄 아냐고 알바가 물어보고 있다.
주위의 시선은 모두 나를 향해 있다.
침이 넘어가고, 그 때 처음으로 이 나라에서 굶어 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한 가지 위안은... 알바가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다는...(비겁한 변명인가...)

내가 말한 건 정말 간단했다.
"No.2, 1 meal please." (대부분의 나라에서 세트 메뉴는 meal 로 시킨다)

"???" (알바 meal을 못 알아듣는 듯 보였다)

"No.2, 1 combo please."(콤보는 보통 감자를 제외하고 버거와 콜라만 말하지만, 세트로  통용되는 나라도 있다)

"???" (알바 combo를 못 알아듣는 듯 보였다)

"(한 숨), No.2, 1 set please."(역시 그냥 set로 쓰는 나라들도 있다)

"??? Can you speak English?"

"!!!"

어쨌건 그 날 징거버거 세트는 겨우겨우 시켜서 포장까지 해 나왔다. -ㅅ-



그 뒤로 컨더지나 마이땅라오를 가면 항상 나는 외친다.
"차이딴"
차림표라는 뜻 같은데(뜻 따위 아무래도 좋다. 뜻이 뭐건 알게 뭐야), '차이딴'이라고 외치면 책받침 같은 곳에 메뉴를 쭉 적어놓은 카탈로그를 보여준다.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키면 됨. 주문 1분만에 완료.

중국어 따위 몰라도 된다.

죽으란 법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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