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 :::

세계종교와 철학 1 - 카르마와 다르마

아퀴 2006. 7. 18. 23:43

무엇일까? 공책이다

나는 예전부터 신화, 종교 등에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요즘 듣고 있는 "세계종교와 철학"은 꽤 만족해하면서 듣고 있는데 익히 알고 있던 지식도 있고, 조금 잘못 알고 있던 지식도 있고, 재미있는 지식도 있다. 기회가 되는데로 재미있는 것은 올리도록 하겠다.

오늘 배운 것은 인도의 힌두교(Hinduism)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동안 알고있던 것에 관해 말하자면 인도에는 기본적으로 다신종교이고 여러신이 존재한다. 이 중에서 가장 최상급의 신으로 세 신이 존재하고, 그 세 신이 기본적으로 우주의 만물을 관리한다. 브라흐마(Brahma), 비슈누(Vishnu), 티린(Tirin)... 아니지 시바(Siba)의 세 신이다.

브라흐마는 세계를 창조하고, 비슈누는 세계를 유지 보수-_-하며, 티린이...시바는 세계를 파괴한다. 이 창조 → 유지보수 → 파괴가 수 백만년을 주기로 계속되는 것이 인도의 세계관이다. 기본적으로 이 세신이 삼신일체라는 것이 힌두교의 사상이며 불교의 신화와 복잡다양하게 얽히면서 신들 사이에 난리가 난다.

쉬는 시간...


불교가 융성할 시기에 브라흐마가 불교에 귀의하여 시바를 제압하여 불교에 귀의시켰다는 신화가 전해져오고 있고, 비슈누의 경우 10여번의 화신으로 현세에 나타나 세상을 구원하는데 그 중 9번째는 부처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힌두교와 불교가 막 섞이는 문제는 내일 불교를 배울 때 배울 지 안 배울 지 모르겠다.

다른 신화들은 차후에 기회가 있을 때 포스팅하기로 하고 오늘은 카르마(Karma)와 다르마(Dharma)에 대해서만 몇 글자 적어보도록 하겠다.

기본적으로 내가 알고있던 카르마와 다르마는 둘 다 운명이라는 뜻으로 하나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고 하나는 그 안에서 바꿀 수 있는 운명을 뜻하는 것으로 알고있었다. 즉, 누군가가 30대에 죽는 것은 거스를 수 없지만 그 30대가 되기까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바꿀 수 있는 운명... 이런 개념이었다.

오늘 배운 새로운 개념.(불교의 8계는 원래 알던 것이고...)
힌두교의 3가지 기본 원리는 업, 윤회, 해탈의 세 가지이다. 이는 불교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보통의 종교가 필멸의 존재(인간)가 불멸의 존재(신)가 되는 과정에 대한 언급과 희망을 제시하는 반면에 이 종교는 그 궤를 달리한다. 즉, 힌두교에서는 불멸은 그 문제 대상이 되지 않는데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멸의 대상이다. 업을 행하며 영원히 윤회하는 데 그 과정이 고통이다. 따라서 이 윤회를 벗어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는데 그것이 "해탈"이다.

윤회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세계에 태어나는 지에 대한 것이다.(여기서부터는 내가 그냥 아는 부분이므로 틀릴 수 있음)
불교에서는 6가지의 도와 극락으로 세상을 나누었다.
가장 위에 있는 것이 극락. 윤회를 벗어나는, 즉, 해탈의 경지에 이르면 인간은 극락에 가게 되고 더 이상의 윤회는 하지 않는다.
그 밑에 있는 것이 천상도. 극락과 비슷하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수명이 있으며 그 마지막에 이르면 심한 고통을 느끼며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윤회를 하게 된다.
그 밑에 인간도. 그나마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_-; 이렇게 힘든 인생이 그나마 편한 것이니 세상은 고통.
3번째 축생도. 짐승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_-;;; 그 밑으로는 서열이 불분명한데, 4. 수라도 - 하루종일 싸우고, 5. 아귀도 - 하루종일 배가 고프다, 6. 지옥도 - 지옥은 모두 알 듯. 이 6도이다.

따라서 이 윤회의 수레바퀴를 탈출하는 것이 힌두, 불교의 주요 가르침인데 그 해탈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 중 카르마는 업이라는 의미로 출가를 해서 세상을 등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출가만을 강조해서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고, 출가만을 강조하는 분위기 때문에 대중성의 확보에 실패해 버렸다. 따라서, 새롭게 해탈에 이르는 길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때 나온 개념이 다르마이다. 즉, 누구에게나 사회적으로 정해진 책무가 있는데 그것이 다르마이고 이 다르마를 잘 지키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나온 것이 바로 그 기원이다.

이 다르마에 대해서 바카바트기타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인공인 아르쥬나(Arjuna)왕자가 사촌형제들과의 왕권찬탈 싸움에서 과연 이 살육의 전쟁을 저질러야 할 지 고민에 빠져있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최악의 업을 저지르는 결과가 생기게 되어 해탈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 때 앞서 말한 비슈누신이 크리슈나(Krishna)라는 인물로 화신하여 아르쥬나의 전차장으로 접근한 다음 이야기한다.

"왜 고민하고 있습니까. 해탈에 이르는 길은 여러가지입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사회적 책무(Dharma)가 있는데 '욕심없이,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동하기만 해탈에 이를 수 있습니다."

즉, 카르마에 굴복하지 않고 다르마의 길을 따르라는 말은 여기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신화는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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