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 :::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아퀴 2011. 2. 19. 08:20
어제부터 내 대화명이다.
(물론 내 대화명에 관심 없는 많은 사람들... 미안... 흑흑...)

전부터 쓰려고 했는데, 귀찮고,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해서
미루고 미뤄두다가 이제서야 쓴다.
(사실 쓴줄 알고 있었음 -ㅅ-; 게다가 이거 길고 지루한 이야기라 아무도 안 읽을 것이 뻔함)

※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개념을 끌어와서 쓴 글이지만,
원래의 개념과 다를 수도 있고, 사상가의 사상을 곡해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시뮬라크르(simulacre)는 프랑스어로 흉내, 가짜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보드리야르(Baudrillard)가 현대사회의 특성으로 제시한 개념인데,
(물론 이 때 현대사회가 60년대긴 하다)
이 양반이 주장한 바는 이렇다.

현대 사회는 복제품이 넘쳐나는 사회며,
원본의 의미는 중요치 않아졌으며,
원본과 복제품의 구분이 모호하며,
심지어 원본이 없는 복제품의 복제품이 나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어딘가 '매트릭스'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워쇼스키 형제(인지 이제는 남매인지 여튼)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와 시뮬라시옹'에 영감을 얻어서 만든 것은 맞다.

▲ '매트릭스' 에서 네오가 물건들을 숨기는 책이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다

(하지만 보드리야르는 '매트릭스'에서 쓰인 개념은 자신의 사상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뒤에 쓰기로...)

다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의 개념으로 돌아와서...

보드리야르의 사상은 플라톤의 사상과 주로 비교가 많이 된다.
플라톤은 모두 알다시피 '이데아'로 대표되는 뭔가 굉장한 진리 혹은 원본이 있고,
현재세계는 그것의 복제품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따라서 인간세계의 주 목표는 이 '이데아'계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여튼 플라톤 이 사람은 뭔가 세계에 절대적인 '진리'라는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듯)
이 플라톤의 사상은 서양세계에 큰 영향을 끼쳐서,
기독교적 사상의 큰 바탕이 되었다.
뭔가 "The One" 이 생긴 것(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은 아님).
"The One"은 진리요,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요, 언젠가 회복할 것이다...

그런데, 시뮬라크르가 이 오랜 사상을 뒤집어 엎어 버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헤어 스타일링을 한다.
그런데 이 헤어 스타일링은 무엇이 원본인가?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이 헤어 스타일링의 원본인가?
아니라면 이런 헤어 스타일을 만든 그 사람이 원본인가?
이런 것, 저런 것을 다 떠나서 이 헤어 스타일링의 원본을 찾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일련의 것에서 '원본'이 '복제품'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나?

내가 블로그를 쓰고 있는 이 것도 생각해보자.
과연 내 말투나, 문장 구조는 내가 origin 인가?
이 것도 어디선가 본 것과, 어디선가 들은 것과, 어디선가 느낀 것,
그런 것들의 복제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복제품이야 말로 내 삶과 나를 설명할 수 있는 origin 이 되어 버린다.
'나'라는 것으로부터 '글'이 나온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복제품인 '글'들을 통해서 '나'를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이 블로그는 나다.
(보드리야르는 '지도'와 '영토'를 통해서 세련되게 설명해준다.
현대에서 '영토'는 '지도'보다 앞서서 존재할 수도 없고,
'지도'에서 없어진 이후까지 존재하지 않고,
이제는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시뮬라크르의 시대에 원본과 복제품은 더 이상 중요하지가 않게 돼 버린 것이다.
세상은 복제품의 시대이며, 이 시대에 더 이상 원본보다 못한 복제품도 존재하지 않고,
복제품보다 좋은 원본이란 것도 없다.

연애는 어떨까?
우리가 하는 연애라는 것의 원본이라는 것이 있을까?
TV 드라마나 영화, 책에서 봤던 그런 곳에 가서,
식사나 커피를 먹거나 마시고, 연극이나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데이트를 한다. 그리고 이별을 한다.

우리가 하는 연애가 이 것을 보고 만드는 TV 드라마의 원본일까,
TV에서 하는 드라마가 우리가 그것을 보고 데이트 하는 연애의 원본일까?
이런 것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드라마 같은 연애를 꿈꾸는 사람들을
과연 뭐라고 할 자격이 있나...



여기까지 시뮬라크르와 관련된 내 이야기를 끝내고...
'매트릭스'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워쇼스키 형제(그냥 이게 입에 붙었으니까 이걸로 하자)가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영감을 받은 건 분명해 보인다.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복제품인지 모르는 세계관임은 분명하니까.

그런데 보드리야르는 왜 매트릭스를 자기 사상과 다르다고 했을까?

보드리야르의 사상대로라면,
'매트릭스'에서 Neo 는 없어야 되는게 맞다.
그리고 그냥 그대로 매트릭스의 세계는 유지되고 마무리 돼 버렸을 것이다.

가상의 세계는 실재를 넘어 초과실재(hyper-reality)된 사회니까...

디즈니 랜드나 라스베가스라는 이미지는
그것의 실재와는 다른 가상과 상상의 산물이지만,
이미 실재를 넘는 초과실재된 곳이 돼 버린 것이고,
바로 그 초과실재가 실재를 대체해버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걸프전의 CNN을 보며,
실재의 걸프전을 CNN 화면들이 대체해버린 초과실재의 예를 들어준다.
우리가 기억하는, 생각하는, 받아들이는 걸프전은
실재의 걸프전이 아닌 CNN의 화면에 비친 걸프전이다.
CNN이 가상의 전쟁시나리오를 쓴다면,
우린 그런 시나리오로 걸프전을 대체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보드리야르가 '매트릭스'각본을 썼다면,
혹은 보드리야르의 사상대로 '매트릭스' 각본이 완성됐다면,
초과실재인 매트릭스가 실재인 지온을 대체 해버리는 것으로 결말을 내렸을 것이라고 본다.

마치 우리들이 하는 연애가 TV 드라마, 영화의 연애와 닮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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