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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의 변

아퀴 2009. 11. 21. 13:40
일단 데이터는 따로 잘 보관해 놓았으니 돌아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습니다.

타이밍이 미묘하여 오해를 받을 여지가 충분히 많은데,
생각보다 간단한 이유로 블로그 문을 닫습니다.

제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는 여러가지 이유로 그룹 지어져 있는데,
예를 들면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화사 사람들(예전의 경우 여자친구가 있겠네요)등등 로 서로 엄격히 구분하고 어울리는 자리는 만들지 않습니다.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역들이 깨어져서 아팠던 경험이 많은 편이라 나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요즘 들어서 이 나름의 사회적 영역들이 깨지는 과정을 목격하고,
조금은 떨어져서 관찰해봤지만 역시나 힘든 건 저뿐이라 다시금 이런 영역들을 깨버리는 일들은 없어야겠구나라고 마음 먹고는 합니다.

마찬가지로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정도 읽을 대상을 짐작하고 글을 쓰게 됩니다.

읽으로 올 것 같은 사람, 읽어 보길 원하는 사람,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읽으러 오지 않길 바라는 사람.

이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느끼면서 더 이상 글을 쓰기는 힘들게 됐습니다.

가뜩이나 요즘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져서 속상한데,
이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그 어디에도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졌네요.

당분간은 못 보겠네요.

"그런식으로, 그는 사라졌지요(And, like that, he's gone)."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탓으로 내 곁에서 사라지게 했던 사람들.
 
한때 서로 살아가는 이유를 깊이 공유했으나 무엇 때문인가로 
서로를 저버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관계의 죽음에 의한 아픔이나 상실로 인해 
사람은 외로워지고 쓸쓸해지고 황폐해지는 것은 아닌지.
 
나를 속이지 않으리라는 신뢰, 
서로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사람이 
주변에 둘만 있어도 살아가는 일은 덜 막막하고 덜 불안할 것이다.
 
 
마음 평화롭게 살아가는 힘은 서른이 되면 혹은 마흔이 되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내 아픔과 
기쁨을 자기 아픔과 기쁨처럼 생각해주고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도 
들어주며 있는 듯 없는 듯, 늘 함께 있는 사람의 소중함.
 
 
그것이 온전한 사랑이라는 생각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행복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인연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지난날 내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덜 주었을 것이다.
 
결국 이별할 수 밖에 없는 관계였다 해도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시의 한 구절 처럼 우리가 자주 만난 날들은 맑은 무지개 같았다고 
말할 수 있게 이별했을 것이다.
 
진작, 인연은 한번 밖에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더라면.
 
 
 
- 신경숙 "인연은 한번 밖에 오지 않는다"